[현장메모]‘갑질 방지법’ 실효성 거두려면?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세계파이낸스=안재성 기자]지난해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딸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광고회사 직원에게 물벼락을 가했다. 또 조 회장의 처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경비원들에게 온갖 잔심부름을 시킨 걸로 알려진 데다 폭행 동영상까지 퍼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처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뱅커(PB) 사이에 벌어진 일을 보면, 이같은 갑질행태가 재벌가에만 만연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평소 정 교수의 자산을 관리하던 한국투자증권 PB는 정 교수의 자택에서 개인용컴퓨터(PC) 하드디스크를 교체해줬다. 또 왕복 약 6시간 거리인 경상북도 영주의 동양대까지 함께 가서 학교의 PC 반출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조 장관과 정 교수의 집에 매일 식자재까지 배달해주는 등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런 갑질이 금융권에서, 특히 실적이 소득과 연동되는 증권사 PB 및 보험설계사들과 고객 사이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 PB A씨는 “VIP 고객의 경우 각종 잔심부름은 물론 이삿짐 나르는 것까지 도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보험설계사 B씨는 “매년 명절이면 우리 집이 아니라 고객의 집에 방문한다”며 “전 부치기, 설거지 등 자질구레한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10억원 이상의 돈을 맡긴 고액자산가에게는 증권사 PB가 철저한 ‘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사실 잔심부름 정도는 흔한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금융권 외에도 한국 사회의 갑을 관계에서 부적절한 행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류의 갑질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공무원, 공공기관, 원청, VIP 등 다양한 부류의 갑질을 막기 위한 ‘갑질 방지법’이 여럿 제정돼 있다.

 

하지만 이같은 법규가 마련됐음에도 갑질 행태는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갑질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원청에게 다소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꾹 참는 수밖에 없다”며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신고한 뒤 거래가 끊기면 우리만 손해”라고 말했다. 

 

따라서 갑질 방지법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 외에 갑질이 주는 피해와 고통의 심각성을 알리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한 보험설계사는 “사실 갑질을 하는 고객은 그것이 나쁜 행위라는 자각이 별로 없다”며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처럼 인식한다”고 말했다.

 

한때 감정노동자, 콜센터 상담원에 대한 폭언과 욕설 등이 문제시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관련법규를 만든 뒤 이는 잘못된 행위라는 홍보를 거듭하자 콜센터 상담원에 대한 폭언과 욕설은 크게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콜센터 상담원은 어느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입니다'라는 캠페인도

인식전환에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갑질 행태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리고 법적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부각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돈이면 다 된다는 잘못된 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가치관 재정립 등을 위한 범 국가적인 노력과 함께 사회적인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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