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노트] 일본 경제보복을 전화위복 계기로 삼으려면…

조급함 버리고 중소기업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꿔야

 평소 케이블TV 골프 채널에서 레슨 프로그램을 가끔씩 보는 편이다. 레슨 프로그램에서 프로들이 슬라이스나 비거리 등으로 고민하는 아마추어의 스윙을 금방 교정해주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그렇지만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게 아니라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스윙의 기본이다. 그립부터 어드레스 자세, 몸통 회전, 공의 위치 등 스윙의 기본을 점검해서 잘못된 습관을 한 두가지만 교정해도 조금 전까지 칠 때마다 좌우로 급하게 휘던 공이 똑바로 날아가고 거리도 늘어나는 것을 본다.

 

 기본이 중요한 것은 단지 골프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운동이나 공부도 기본과 기초가 튼튼해야 무성하게 자랄 수 있고 조건의 변경에 쉽게 대처할 수 있다.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뿌리가 튼튼한 경제는 대외여건의 변화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일본의 맥락없는 수출규제에 대응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여당이 동분서주 하며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정부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과연 이게 정답일까”하는 의문이 한 켠으로 든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기술개발과 제품 상용화, 설비투자에 올해보다 1조3000억원 늘어난 2조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일본의 전략물자 1194개와 소재·부품·장비 전체 품목 4708개를 분석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 100개 품목을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이중 기술 확보가 시급한 20여개 품목에는 추경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나머지 80개 품목은 연구개발(R&D)를 대대적으로 지원해 빠른 기술 축적을 이뤄나가기로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자구책 마련이긴 하지만 이참에 산업의 뿌리에 해당하는 부품소재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다. 잘하면 전화위복의 계기도 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전자기기 등 완제품을 수출해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이를 제조하기 위한 부품·소재·장비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 뿌리가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로인해 외형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속은 일본이 차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가마우지 경제론’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2009~2018년 10년간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240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1년 ‘소재ㆍ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부품소재특별법)을 제정해 부품소재산업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지원해왔다. 이 법률은 당초 10년 한시법으로 제정됐으나 한 차례 연장돼 2021년 종료될 예정이다. 이 법률 등에 힘입어 그동안 국내 부품소재산업이 많이 발전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번 일본 경제보복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

 

 정부의 육성정책에도 불구하고 국내 부품소재산업이 취약한 원인은 무엇일까? 주로 중소중견기업이 담당하는 부품소재산업은 오랜 기간 기술축적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와 초기 수요처 확보가 필요하다. 자금력과 기술인력, 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으로서는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어렵게 제품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이 받아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섣불리 도전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성공적인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제품 개발 이후 수요처를 확보해 자체적인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으로서는 치열한 시장경쟁으로 인해 품질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성숙도가 떨어지거나 안정적 공급이 불투명한 국내 중소기업의 부품소재를 선뜻 채택하기 어렵다. 더구나 일부 대기업은 자사 이익 극대화를 위해 ‘가격 후려치기’ 등으로 중소기업의 일할 맛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는 정부가 발 벗고 지원에 나선다 해도 부품소재 분야의 강소기업이 나오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정부와 관련업계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부품소재 산업을 키워 나가기 위한 정책과 제도를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당장 지원예산을 늘리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정부 요인들이 기업체를 방문해 관련 산업에 반짝 관심을 보인다고 해서 단기간 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개별기업이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개발과 시행착오를 거쳐 기술을 축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히 예산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예산증액도 언제까지 유지될지 장담하기 어렵고,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인지도 한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속적이면서도 강력한 대책은 중소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예산지원을 늘리는 숫자놀음보다는 산학연 연구개발 연계를 강화하고, 판로 개척을 지원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경우 제도적 혜택을 늘리는 등 중소기업을 위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품소재 뿐만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강소기업이 생겨날 수 있고,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은 경제체질로 탈바꿈할 수 있다.

 

 정부 뿐만아니라 대기업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이제는 중소기업이 단지 납품업체가 아니라 지속적 성장을 위한 동반자라는 인식아래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원활한 부품소재 공급을 통해 안정적 경영을 해나갈 수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대기업으로 하여금 중소기업을 진정한 협력자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호원 본부장 jh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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