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의 金錢史]돈으로 그리스 주무른 페르시아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스파르타 등 그리스 공격 감당 힘들어진 페르시아,돈 뿌려서 폴리스 간 분열 획책

그리스, 폴리스 간 전쟁 및 인플레이션으로 피폐…마케도니아에 무릎 꿇어
  •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의 유적. 고대 페르시아는 광활한 영토와 막대한 국부를 자랑했으나 군사적인 취약성 때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멸망당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천민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 등의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돈을 숭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정확히는 돈이라 불리는 종이쪽지를 숭배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돈’과 ‘경제’란 단어에 목을 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한낱 종이쪽지에 지배당하고, 그 종이쪽지에 사회 전체가 얽매여 신음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세계파이낸스는 [안재성의 金錢史] 시리즈를 통해 돈과 금융의 역사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전쟁 중 유명한 것은 ‘마라톤 전투’, ‘살라미스 해전’, ‘플라타이아 전투’ 등이다.

    ‘플라타이아 전투’의 승리로 그리스는 페르시아 왕 크세륵세스의 거센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수십년간 페르시아와 그리스는 동지중해 및 소아시아에서 맞붙었다.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우스는 직접 수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페르시아에 원정하기도 했다.

    흔히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일컬어진다. 그만큼 거대한 영토와 부를 지닌 페르시아에 비해 그리스는 너무 작고 가난했다.

    고대 페르시아의 영토는 오늘날의 이란,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에 터키 일부 등을 포함할 만큼 광대하다. 반면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 그리스의 폴리스(도시국가)들은 발칸 반도의 서부와 남부 지역만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을 중심으로 농업, 상공업, 광업 등이 두루 발달한 페르시아의 부는 그리스의 수십 배에 달했다.

    유명한 영화 ‘300’에서도 페르시아는 웅후한 국력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군을 갖춘, 비교 불허의 최강국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훗날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군사적 위업으로 ‘대왕’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군사력은 알렉산드로스 등장 이전부터 그리스가 더 강했다. 모든 폴리스가 합심해서 싸운 적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쟁터에서 그리스군은 페르시아군을 압도했다.  

    알렉산드로스 이전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정복하지 못한 까닭은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페르시아의 돈에 농락당한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단련된 그리스군의 힘

    그리스도 처음에는 10만이 넘는 대병력을 왕의 말 한 마디로 동원하는 페르시아의 힘을 두려워했다. “크세륵세스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헛소문만으로도 수십개의 폴리스가 싸워보지도 않고 백기를 들 정도였다.

    하지만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대승을 거둔 뒤 페르시아의 군사력이 의외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스는 폴리스들 간에 전쟁이 쉬지 않고 일어나는 나라였다. 4년에 한번씩 올리피아 제전(현대 올림픽의 기원)을 연 것도 4년에 한번만은 서로 싸우지 말자는 의미였다. 물론 제전이 끝나면 곧 다시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덕분에 그리스군은 모두 싸움에 단련된 정예병들이었다. 반면 페르시아군은 숫자는 많았지만 대부분 급하게 징집된 농민병들이었다. 그들은 훈련도가 떨어지고 전투에 대한 의욕도 별로라서 전황이 불리해지면 즉시 등을 돌려 달아나곤 했다.

    무장의 차이도 컸다. 그리스군은 방패와 창, 갑옷과 투구로 단단히 무장한 중보병이 주력이었다. 반면 페르시아군은 갑옷은 커녕 방패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활 한 자루만 쥔 경보병이 대다수였다.

    페르시아 전쟁를 다룬 역사책 ‘역사’를 서술한 위대한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마라톤과 플라타이아에서 그리스가 거둔 승리의 주 원인으로 페르시아군의 빈약한 무장을 들었다.

    따라서 실제 전투, 특히 단병접전에서는 그리스군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페르시아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리스는 이후 공격적으로 나선다.

    아테네의 장군 키몬은 기원전 468년 에우리메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등 이오니아 지방(소아시아 서안)에서 페르시아 세력을 일소했다. 바다에서 아테네 해군은 페르시아 해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둬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맞붙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탓에 한동안 수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승자인 스파르타는 즉시 페르시아 원정을 실행했다. 기원전 399년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우스는 수만 군대를 지휘해 소아시아로 쳐들어갔다.

    페르시아 역시 군대를 모아 맞붙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연전연패한 페르시아는 소아시아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다. 뿐만 아니라 아게실라우스는 페르시아의 심장부인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까지 노리고 있었다.

    ◇‘황금 호우’에 몰락한 그리스

    상황이 변한 것은 전쟁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페르시아가 황금을 이용한 이간술을 쓰면서부터였다.

    페르시아는 아테네, 테베 등에 막대한 군자금을 제공하면서 스파르타에 대항해 일어설 것을 종용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그리스의 패자인 스파르타의 통치 방식에 불만이 많던 여러 폴리스들은 기뻐하면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스 본토가 전화에 휩싸이자 위기감을 느낀 스파르타의 에포로이(감찰관, 왕과 함께 정무를 맡는 고위 관직)들은 페르시아 원정 중인 아게실라우스를 소환했다. 아게실라우스는 크게 실망했지만,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군대에 회군을 명령하면서 “페르시아는 3만 명의 궁수로 나를 이겼다”고 빈정댔다. 페르시아가 그리스에 뿌린 금화에 궁수가 조각돼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 ‘300’에 페르시아가 돈으로 스파르타 고위층을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아게실라우스의 원정 후에는 위기감을 느낀 페르시아가 적극적으로 황금을 뿌렸다.

    아테네, 테베 등에 군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고위층에 개인적으로 뇌물을 줬으며, 심지어 스파르타 지도자들에게도 금은보화를 듬뿍 안겼다. 페르시아의 국부는 그리스의 수십 배에 달했으므로 돈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를 통해 그리스에 황금이 쏟아져 들어오자 페르시아가 기대한 ‘우호 세력’ 만들기 외에 또 다른 효과도 발생했다. 지독한 인플레이션이었다.

    만약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모든 국민에게 매년 1억원씩 준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억대 연봉자가 될 테니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대공황 후 독일에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때 독일에서는 감자 한 포대가 1조마르크에 거래됐으며, 돈의 가치가 휴지만도 못해서 연료로 사용됐다.

    페르시아가 금은보화를 뿌린 후 그리스에서 일어난 현상도 똑같았다. 사방에 금화와 은화가 넘쳐흐르니 자연히 물가가 치솟았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파도는 그리스의 국가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려면 페르시아가 그랬듯이 정부 소유의 보물창고에 금은보화를 보관하고 이의 유통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많은 황금을 소유해본 적이 없던 그리스의 각 폴리스 정부들은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쩔쩔매기만 했다.

    혼란기를 틈 탄 선동가들이 날뛰면서 아테네의 민주 정치는 중우 정치로 타락했으며, 스파르타는 그 막강한 군사력을 지탱하던 ‘실질강건’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결국 그리스는 그간 북방 야만족이라고 깔보던 마케도니아에게 차례차례 정복당하고 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황금 호우’가 그리스를 몰락시킨 것이다.

    여담이지만, 후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3만6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를 침공하자 당시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는 과거에 효과가 증명된 이간술을 다시 쓴다.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 황금을 뿌려서 마케도니아에 대한 반란을 부추긴 것이다. 이 수법은 여전히 성공적이어서 돈을 받은 아테네, 테베 등은 즉시 반란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로스가 본국 마케도니아에 남겨둔 장군 안티파테르는 비명을 지르며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우리가 넓은 대륙에서 싸우는 동안 그리스에서는 생쥐들이 소동을 일으킨 모양이군”하고 비웃으면서 안티파테르의 요청을 깨끗이 무시했다.

    흔들림 없이 계속 진군한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그의 업적에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 외에도 개인의 야망을 위해 본국 시민들의 고통 따위는 가볍게 외면하는 냉혹함이 크게 작용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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