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애매모호한 김영란법'에 웃음짓는 로펌들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규제 행위 광범위하고 복잡…세부내용 대부분 잘 몰라
전문가에 문의해도 명쾌한 답변 대신 얼버무리기 일쑤
  • 세계파이낸스 안재성 기자
    오는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골프장 경영이 극도로 어려워질 것”, “고급 한정식집과 일식집이 문을 닫을 것”, “농촌 경제가 망가질 것”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특히 적용 대상과 범위가 매우 광범위한 데다 세부적인 내용은 전문가들조차 헷갈릴 정도로 애매모호해 혼란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로펌과 그곳에 소속된 변호사들이다.

    ‘김영란법’은 식사, 선물, 경조사 등 세세한 부분까지 규율하며, 적용 대상 역시 공직자뿐 아니라 민영 언론사와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돼 약 400만명에 달한다. 

    사실상 기업의 외부활동 대부분에서 ‘김영란법’을 비껴갈 수 없어 기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무엇보다 그간 관행처럼 진행되던 일상적인 업무까지 ‘김영란법’에 저촉될 위험이 높아 전문가의 조언이 절실한 상태다.

    때문에 로펌에는 각 기업의 문의와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변호사 A씨는 “이렇게 자문 또는 강의 요청이 많은 경우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여타 강의와는 달리 ‘김영란법’ 관련 강의에는 사장 등 경영진들의 질문도 매우 많다”고 혀를 내둘렀다.

    변호사 B씨는 “‘김영란법’ 조항 상당 부분이 애매모호해 어디까지 법에 저촉되고, 어디까지 괜찮은지 명확히 알기 힘들다 보니 관련 질문이 쏟아진다”고 전했다.

    이미 대형 로펌들은 전문팀까지 만들어 기업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광장은 지난해부터 '기업형사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팀'이란 이름으로 김영란법 대응 전담팀을 구성했다. 화우는 부패방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으며, 김앤장, 율촌, 세종 등도 각각 전담팀을 구성했다. 구성원들은 모두 기업 자문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변호사들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전뿐 아니라 시행 후에도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로펌들은 자문과 강의만으로 최소 수백억원을 벌어들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로펌들이 '김영란법'으로 짭짤한 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 그들이 제공하는 자문과 강의의 질이 소비자들에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한 기업 임원은 “궁금한 점이 많은데, 도대체가 명확한 답을 해주지 않는다”며 “변호사들이 앵무새처럼 ‘그건 괜찮을 듯 하기는 한데, 일단 하지 않는게 좋을 듯 하다’는 답변만 반복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임원은 “이렇게 부실한 강의로 그리 높은 강의료를 요구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변호사들도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변호사 C씨는 “‘김영란법’ 관련 조항 중 ‘공무수행인사’ 등 애매모호한 내용이 너무 많아서 ‘솔로몬식 해법’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변호사 D씨는 “속된 말로 누군가가 먼저 ‘1번 타자’로 매를 맞아 봐야 강의의 질이 올라갈 것 같다”며 “판례가 어느 정도 쌓여야 정확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데, 지금은 판례가 없어서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종사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400만명 및 이들과 연관된 수많은 기업과 단체 등의 업무는 물론 종사자들의 개인생활까지 규율하기 때문에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때문에 수많은 질의가 법률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로 밀려들고 있지만 권익위로서도 손이 모자라거나 유권해석을 내놓기 애매한 경우도 있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보니 어떤 행위가 법이 저촉되는지 안되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가도 명확한 답변보다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얼버무리기 일쑤다. 뿐만아니라 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적발된 당사자들이 수긍하지 못하고 불복하는 사례도 다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법률을 시행하려면 법률 적용 대상자들이 법률과 관련해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은 시행여부를 두고 오랜기간 논쟁만 했지 정작 법률의 규제대상을 세부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실제와 달리 "이것도 법에 걸린다더라" 식으로 잘못 알고 경우도 꽤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부패문화를 척결하는 획기적 법률이라는 취지에 도취되어 세부적인 준비가 덜 되어 보이는 '김영란법'이 자칫 로펌과 변호사들의 배만 불리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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